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는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관련 온라인 상담소를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주 4일(월, 수, 금, 일) 동안 하루 3시간 정도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실시간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메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수시로 상담을 접수하고 있기도 하다. 상담 건수가 많지는 않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고, 윤석열 정권 시절에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인권 담론 자체가 침체된 탓도 있어 보인다.
공론화되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의 인권 문제
최근 지음 상담소에 아동복지시설에 거주하는 한 청소년이 상담을 요청했다. 지난해 겨울에 시청에 자신이 겪은 체벌과 (성)폭력을 신고했지만 6개월이 넘도록 신고 처리 결과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더해, 민생지원금과 고유가피해지원금 사용에 있어서의 불합리한 제한들, 일부 원생에게만 용돈 사용처를 제한하는 차별 행위, 일부 원생에게만 휴대전화 개통을 불허하는 차별 행위,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로 휴대전화를 금지하거나, 휴대전화 수리 비용을 후원금이 아닌 오직 매달 소액의 용돈을 모아서만 내도록 하는 처벌 행위 등도 인권침해가 아니냐는 상담 내용이었다.
상담소에서 지금껏 학교에서의 인권침해 상황을 많이 상담해왔던 터라,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인권 문제, 인권침해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 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학교 내 인권침해 상황이라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서의 대응,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의 대응을 구분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안내할 수 있다. 반면 아동복지시설에는 그나마 실효성이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상담 사례가 접수된 후, 국가인권위원회의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결정례들을 찾아보고, 관련 권고를 추적해보았다.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제공하는 아동보호서비스 업무 매뉴얼, 아동 복지시설 아동 인권보호 매뉴얼, 아동권리규정 표준안 등이 아동복지시설 내의 아동인권 보호를 위한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대부분의 내용은 아동복지시설 내 아동학대 예방 및 처리 절차에 관한 것과 ‘아동권리협약’에 제시된 아동인권의 원칙들을 선언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그나마 아동인권의 원칙에 맞게 아동권리규정 표준안에는 사생활 보호, 자유권 보장, 소유권 존중, 자치활동 보장, 휴식권, 권리 침해 구제 절차 등이 학생인권조례와 비슷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동복지시설은 아동권리규정 표준안을 자치회를 통해 정하고 이를 원생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상담소를 찾아온 청소년이 거주하고 있는 시설의 홈페이지나 사무실 등에서는 아동권리규정을 알리는 어떤 안내물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시설들을 둘러봐도, 이러한 아동권리규정이 실제로 규범력을 가진 사례나 이를 기초로 시설을 운영하는 사례는 당연히 아직 보지 못했다. 용돈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자치활동은 명분뿐이었으며, 사생활이 잘 보장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내담자를 통해 확인되었다. 물론 권리구제조차도 신속하게 비밀을 보장하며 이뤄지지도 않았다.
작년에 <시사in>이 보도한 197곳의 아동양육시설 생활규칙 분석 기사에 따르면, 197곳의 대다수 시설에서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칙들이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휴대전화 사용 및 용돈을 통제 수단으로 일상생활 규제하고, 행실을 기준으로 대학 진학을 제약하는 등 교육권을 침해하며, 특정 종교 예배 등을 의무화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체성 및 개성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 전원 및 퇴소(통고) 제도를 통한 생존권 위협 등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는 지음의 상담소를 찾아온 청소년의 사례가 소수의 문제가 아닌 상당히 일반화된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기사다.("금지, 압수, 배상, 박탈··· 전국 아동양육시설 197곳 생활규칙 분석", <시사in>, 948호, 2025.11.10.)
아동학대만 아니면 괜찮은가
정리해보자면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아동인권이 보장되는 핵심적 두 가지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명백한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아동학대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는 인권적 절차는 갖춰야 한다.(이는 이미 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아동인권은 선언적으로 명시하되 아동인권침해는 법 위반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예방책이나 절차는 규정하지 않고 이에 관한 실제적 구제도 이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사법적 기준으로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대신하는 현상과 맥을 같이한다. 예를 들어 스쿨미투 당시 성차별적 발언을 한 교사들의 행위는 윤리적, 인권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에도 현행법상 사법적으로 무혐의나 무죄라는 판단이 그들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문제를 축소시키곤 했다. 이런 현상은 위법, 불법이 아니라면 아동인권 침해적인 행위도 해도 된다는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이들을 보호·교육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붙으면 더욱 쉽게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더 멀리까지 밀어붙이면, 폭력적이거나 차별적인 행동,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 등도 법정에서 명백하게 아동학대를 증명할 수 없다면, 형사법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정당한 행위라는 주장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아동복지시설이나 학교에서는 인권침해가 아동학대는 아니므로 현장의 여건상 묵인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공론화될 때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해 공분하고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 하지만 아동학대는 말단적 현상이다. 아동학대 행위의 뒤에는 가부장적인 양육 태도, 아동에 대한 편견과 무시, 아동을 소유물로 보는 관점 등 아동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차별적 사회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유엔의 권고와는 달리 아동에게 가정과 유사한 양육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대규모의 시설화된 양육환경에 의존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시설종사자로 하여금 인권 보장의 원칙에선 눈을 돌리고, 행정편의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태도로 기울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아동학대 방지만으로는 아동이 행복한 양육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보고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권친화적 양육환경 제공을 위해 이미 마련된 아동권리규정의 규정력을 강화하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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