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익, 나눠라 vs 재투자하라"…정부 내 '엇박자' <헤럴드경제>)
이 대통령 "초과이익 분배 위해 기본소득 같은 새 메커니즘 필요" (<한겨레>)
노동장관 "초과이익 분배는 재투자…협력사와 나눠야" - 구체적 방안으로 '계약 단가 조정' 제시 (<매경 Economy>)
한국 정부 1년 예산 절반에 달하는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사용처를 놓고 사회적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인사이드경제>는 각각의 입장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런 토론과 논쟁 자체가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환영할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과급 논쟁, 드디어 공론장이 열렸다
게다가 토론의 내용이 대부분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기까지 하다. 공론의 장이 열렸으니 나도 숟가락을 얹어볼 생각이다. 재분배, 재투자, 기본소득…. 과연 어떤 대안이 더 있을까.
영업이익의 일부는 세금으로 국가가 거둬가고, 주주는 배당을 받을 수 있다. 노동자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은 재투자를 실시한다. 즉, 이거냐 저거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순위나 비율에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결국 국가, 주주, 기업, 노동자 모두 얼마간의 몫을 분배받는다.
다만 <인사이드경제>는 세금이나 주주배당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 쪽이 전문 분야다. 지난 몇 차례 글에서도 30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영업이익이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 그것도 DS 부문 노동자들만의 노력으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점, 따라서 영업이익 형성에 기여한 공급망 전체로 배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납품단가 조정만으로 노동자에 닿지 않는다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도 협력업체에 성과 배분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방법으로 납품단가 조정(인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있다. 협력사 자본가들이 인상된 납품단가를 노동자에게 분배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 즉, 자신의 이윤 또는 비용 지출로 모두 사용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게 신뢰가 없어서 무슨 일을 하느냐?" 하지만 이 불신에는 근거가 있다. 과거 재벌 회장님들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러 형사처벌이 될 때마다 각종 재단, 기금, 펀드를 만들었던 사례가 여럿 있다. 일부 기금은 협력업체에 지원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협력사 노동자들 임금이나 처우가 개선되었다는 사례를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납품단가 조정은 일부 가능하다 하더라도 조정된 금액을 협력사 노동자 임금인상 재원으로 쓰도록 강제할 방법은 더더욱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조선업과 현대차 등에서 '원하청 상생협력 선언'이라는 시도가 있었지만, 강제성 없는 선언이 실효성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연 조선업과 현대차에서 협력사 노동자의 삶은 그 선언 이후 나아졌는가?
성과급보다 오래 가는 분배, 임금의 바닥을 세워야
그렇다면 삼성전자 성과를 공급망 전체와 나누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우리는 '성과급'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성과급은 경기와 실적에 따라 오르내리는 사후 배분이다. 호황기에는 크게 부풀지만, 불황기에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더구나 성과급 논쟁은 자칫 직접고용 노동자 내부의 몫 다툼처럼 보이기 쉽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성과급만이 아니라 임금의 바닥(floor)을 새로 세우는 일이다. 삼성전자 공급망 최저임금. 이름은 낯설지만 발상은 단순하다. 삼성전자의 거대한 영업이익이 공급망 전체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면, 최소한 그 공급망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법정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임금 하한선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주요 협력업체, 사내하청, 상주 장비업체, 시설관리, 물류, 보안, 청소, 폐기물 처리 등 삼성전자 생산체계에 필수적으로 결합된 노동자들에게 법정 최저임금의 1.5배 또는 2배 수준의 공급망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제도, 이름하여 '삼성전자 공급망 최저임금'이라 부를 수 있다. 반도체산업 전체로 넓힌다면 '반도체업종 최저임금'도 가능하다.
노조법 2조, 공급망 교섭의 문을 열다
"발상이야 그럴듯하지만 그걸 실현할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다. 방법이 있다. 개정된 노조법 2조를 활용하면 된다. 사실상 삼성전자의 진두지휘 하에 사업이 펼쳐지는 공급망의 협력사들, 그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결국은 삼성전자다. 따라서 이들 협력사 노동자에게는 삼성전자에 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원청 상대 교섭은 사내하청업체나 가능한 것 아닌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얘기다. 원청이 노동조건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느냐가 중요하지, 협력사가 사내에 있느냐 사외에 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둔 자본가들의 공포 마케팅도 대부분 '사외협력업체'가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하청업체 수백 곳과 하나하나 노사 협상을 해야 하고, 해외 공장을 지을 때도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 누가 한국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2025년 8월 14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 <한국경제신문> 인터뷰)
"자동차, 조선 등 국내 주요 산업은 업종별로 다양한 협업체계로 구성됐고, 협력업체 수는 최대 수천개에 달한다 ...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경우 1년 내내 협력업체 노조의 교섭 요구나 파업에 대응해야 한다" (2025년 8월 19일, 경제6단체 및 자동차/조선/건설 등 9개 업종별 단체 결의대회)
아무리 큰 제조업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사내협력업체가 수백·수천 개에 달하지는 않는다. 경총과 사용자단체가 언급하는 수백·수천 개의 협력업체란 사외협력업체가 핵심이다. 즉, 자본가들은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사외협력사 노동자들이 원청 상대 교섭권을 획득했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수백·수천 개가 아니라 하나의 교섭
그렇기에 협력사 노동자가 단결해서 '삼성전자 공급망 최저임금 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수백·수천 개 교섭이 아니라 삼성전자 상대로 하나의 교섭이면 된다. 불법 아니냐고? 무슨 소리인가.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해 업종별·산업별 교섭을 열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 건 입법을 주도한 정부·여당이었다. 그 취지를 노동조합이 살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만일 이런 협약, 즉 공급망에서 법정 최저임금의 1.5~2배 수준의 최저임금이 보장된다면, 삼성전자는 해당 노무비를 반영한 납품단가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이 최근 입법한 '중간착취 방지법'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이 제도는 원청이 하청업체에 비용을 지불할 때 임금과 일반 비용을 구분해 지급하도록 한 것인데, 원청이 지급한 인건비가 하청노동자에게 온전히 전달되도록 하겠다는 취지 아니던가. 삼성전자 공급망 최저임금이 단체협약으로 보장된다면, 삼성전자는 이를 반영한 노무비 인상 및 단가 인상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게 된다.
길을 먼저 보여준 카카오지회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온)의 경우 노조로 조직된 카카오 계열사 전체를 상대로 이 부문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단체교섭으로 체결하고 있다. 2023년 시간당 1만 500원이었던 카카오 최저임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교섭을 통해 인상되었으며, 지난해에는 시간당 1만 1200원으로 올랐다. 법정 최저임금의 110%를 넘는 수준이며, 올해 카카오 최저임금은 교섭이 진행 중에 있다.
놀랍게도 카카오 본사만이 아니라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뱅크 등 주요 계열사는 물론이고 이들 계열사의 자회사, 손자회사 노동자까지 모두 '크루유니온'이라는 하나의 노조에 조직되어 있다. 국내 최대 플랫폼기업에서 앱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노동자부터 고객센터 상담사와 데이터라벨러 노동자까지.
카카오그룹 전체를 상대로 임금의 최저기준, 바닥이 높아지면 그룹 안에서 벌어지는 임금 격차도 줄어든다. 기업이 임금인상 재원으로 책정한 예산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재량도 좁아진다. 카카오지회가 먼저 보여준 가능성, 공급망 최저임금은 추상적인 꿈이 아니다. 이미 한국의 한 대기업 집단 안에서 불완전하지만 현실의 문법으로 시작된 실험이다.
재분배인가 재투자인가, 둘 다!
그렇다면 같은 질문을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핵심산업 공급망에도 던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플랫폼 산업보다 훨씬 더 촘촘한 생산망 위에 서 있다. 원청의 주문, 납기, 품질 기준, 생산계획, 단가 결정이 협력업체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깊숙이 좌우한다.
하나의 기업집단 안에서 최저기준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다면, 하나의 공급망에서 임금의 바닥을 세우는 일도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막대한 영업이익 일부를 공급망 임금 하한선으로 되돌리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이 제안은 재분배일까, 재투자일까? 실은 두 가지 모두라고 할 수 있다. 공급망 노동자 임금을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는 재분배다. 동시에 숙련, 안전, 품질, 고용안정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는 재투자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산업 전망은 첨단 장비와 클린룸에만 있지 않다. 그 장비를 유지하고, 공정을 지키고, 위험을 감당하고, 제품이 시장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수많은 노동에 있다. 그 노동의 임금 바닥을 높이고 불산 유출 등 위험천만한 노동조건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일은 비용 지출이 아니라 산업 기반을 지키는 투자다.
법정 최저임금도 밀어올릴 지렛대
"지불능력 있는 공급망 임금만 올리면 또다른 차별을 양산하지 않겠는가?" 좋은 지적이다. 삼성전자 공급망 최저임금이 실현된다면, 결코 거기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전체 노동자 임금의 바닥에 해당하는 법정 최저임금 상승의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의 임금분포는 오래전부터 최저임금 근처에 지나치게 많은 노동자를 붙잡아두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법정 최저임금 인상 요구도 늘 "너무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는 자본의 협박 앞에 가로막힌다. 역설적으로 최저임금의 120%, 150%, 200%를 받는 노동자가 더 많아져야, 법정 최저임금 인상의 숨통도 트인다. (☞관련 글 바로가기 : "한국 노동자의 임금분포는 '최저임금'에 갇혀버렸다")
그런 점에서 공급망 최저임금은 일부 대기업 공급망만의 특권이 아니라, 법정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사회적 레버리지로 기능할 수 있다. 노조를 만든 사업장이 싸워 임금을 올리면, 자본가들은 다른 사업장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조직 노동자의 임금을 일정하게 끌어올린다.
싸움은 한 사업장에서 시작되지만, 그 파문은 울타리를 넘어 번진다. 공급망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공급망에서 임금의 바닥을 새로 세우는 일은, 결국 한국 사회 전체의 임금 바닥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작은 발걸음을 도도한 물결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이런 구상을 실현시킬 노동자와 노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옳다. 그저 공자님 말씀 부처님 말씀만 떠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공급망 노동자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지금이 바로 나서야 할 때라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 전국 여러 도시에서 반도체 테스트장비와 부품 제조, 웨이퍼 테스트와 패키징, 반도체 플림칩 제조 부문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에 나서고 있다. 거대한 영업이익을 둘러싼 사회적 토론과 삼성전자 성과급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급망 노동자들은 이미 자신들이 그 이윤의 바깥에 밀려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경제위기 시기에 큰 투쟁을 만들기도 하지만, 불황과 공황의 한복판에서는 조직화 자체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회복기가 시작되면 달라진다.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으려는 자신감이 자라난다. 어제까지 각자 버티던 노동자들이 오늘은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하고, 내일은 함께 요구를 세운다. 지금 반도체 공급망 곳곳에서 움트는 바로 그 기운 말이다.
"삼성전자 역시 노사 타협 시 본사 직원에게 중소기업 근로자 10년치 급여에 달하는 성과급이 한꺼번에 지급될 것으로 보여, 1인당 500만~600만 원 수준의 상생장려금을 받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격차 문제를 들고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5월 20일자 <조선일보> 사설 "성과급 갈등, 노란봉투법 타고 협력 업체 확산되면 더 큰 일")
이 흐름을 읽은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자본가와 보수 언론도 이미 눈치채고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그들의 몫이고, 길을 여는 것은 노동자들의 몫이다. 공급망 노동자들은 이미 작지만 분명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관건은 이 발걸음을 외로운 점이 아니라 도도한 물결로 이어붙일 수 있는가이다. 조직노동운동의 역량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진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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