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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비핵화' 내려놓고 평화체제 집중하자는 정동영 장관 호소, 주목해야 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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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비핵화' 내려놓고 평화체제 집중하자는 정동영 장관 호소, 주목해야 할 까닭은

[정욱식 칼럼] 불가역적인 핵시대로 접어든 한반도, 생존의 조건은?(5)

멈춰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번에는' 선 비핵화' 노선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그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선 비핵화에서 선 평화로, 북한 비핵화 대신 핵없는 한반도로 목표를 재정립했다"라며, 조선(북한)이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비핵화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중단→축소→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비핵화'를 재확인하면서도 조선의 핵활동 중단과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적 의제로 삼자는 취지를 품고 있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도 이와 유사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전 정부의 접근이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 환경 조성'은 분명 새로운 접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계기 기자들과 만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통일부

반쪽짜리로 전락한 안보리 결의

먼저 국제사회의 상당수 국가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공식적인 입장도 비핵화에 맞춰져 있다. 비근한 예로 22일 만난 한미일 외교장관들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견고한 대북 억제 태세를 유지해 나간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목표라고 결의했던 것은 이러한 관성적인 입장 표명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로 간주된다.

그런데 안보리의 대북 결의는 현실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안보리 주도의 대북 제재는 조선의 비핵화를 압박하는 강력한 힘으로 간주되었지만, 정작 조선은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조선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비핵화는 끝났다"는 입장이고, 또 다른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비핵화를 무음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조선과의 전방위적인 협력에 나서면서 제재도 무력화되고 있다.

이렇듯 안보리의 대북 결의는 반쪽짜리로 전락한 상황이다. 실효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안보리 결의를 계속 부여잡고 있는 것이 '과연 실용적인가'라는 의문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직간접적인 당사자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도 이 취지가 담겨 있다. 역대 안보리 결의에는 비핵화에 더불어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노력을 지지한다"거나 6자회담 공동성명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에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협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북·북미 합의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담긴 바 있다.

하지만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협상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이는 조선 핵문제를 풀 수 있는 여러 차례의 기회를 유실시킨 핵심적인 사유에 해당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핵문제 해결의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새로운 접근의 핵심이 될 법하다. 우리가 안보리 결의 등 다자적·양자적 합의에서 비핵화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평화체제를 주목해야 할 까닭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미 정상이 한반도 종전·평화에 의지를 피력해왔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0월 29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가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김정은과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나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했다.

평화체제는 보상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이다

난제는 평화체제와 비핵화의 관계에 있다. 과거에는 평화체제가 비핵화의 대표적인 상응조치로 거론되었었다. 하지만 2019년이 경과하면서 조선은 "핵무력은 더 이상 흥정의 대상에 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불가역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조선이 '선 비핵화'는 물론이고 '후 비핵화'에도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평화체제를 앞세운 새로운 접근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보다 혁신적으로 다듬을 필요가 있다. 크게 세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는 평화체제를 조선의 핵 활동 중단이나 축소에 대한 상응조치나 보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과 목표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을 골자로 하는 평화체제는 조선에 주는 선물이라기보다는 모두에게 이로운 과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조선의 핵 활동 중단이나 축소를 평화협정 협상틀에 담아 상호간 군비통제 및 군축의 의제로 삼자는 것이다. 이는 상호간의 요구와 의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핵협상과 평화체제 협상을 따로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끝으로는 앞선 글들에서 다룬 것처럼, 비핵화 대신에 '한반도를 포함해 핵위협과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취지의 조문을 평화협정에 담자는 것이다. 이는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방적 비핵화 요구를 넘어 모든 당사국이 함께 핵위협을 줄이고 핵군축을 지향하는 공동 목표를 명문화하자는 취지이다.

바라건대, 이재명 대통령의 오는 9월 유엔 총회 연설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거보를 내딛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35년 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번 총회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우리의 형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회원국이 되었다"며, 조선의 공식 국호를 사용하면서 '평화공존'의 의지를 발신한 바 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오늘날, 한반도의 평화공존은 대다수 국민과 국제사회가 염원하는 바이자, 이재명 정부의 목표이다.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은 평화공존을 실질적으로 제도화하는 이정표에 해당한다. 이 대통령이 공식 국호를 사용하면서 직접 당사국들이 모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개시하자고 선언하는 장면을 기대해본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신간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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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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