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을 앞둔 지난 4월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교단 너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제2회 한국어교원 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수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자 초단기 계약과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국어교원들이 겪는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 다섯 편의 수상작을 최우수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가작 두 편 순으로 싣는다. 편집자
우리 직장에 노동조합을 설립했던 해의 일이다.
노동조합의 초대 대표자로서 다짐했던 목표 중에는 조직의 살과 뼈를 갖추는 일이 있었다. 임금을 인상한다든지 부당노동행위를 해결한다든지 하여 당장의 성과를 내고 조합원과 성취감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노동조합의 설립이 우연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조합원을 보호하는 구조를 만들려면 노동조합 조직이 제도적으로 튼튼해야 한다. 그러려면 조직 체계를 구성하고, 노동조합의 업무 지침을 마련하며, 보고와 책임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원칙에 맞는 회계 관리도 필요하다. 이런 요소가 하나하나 쌓여서 조직의 행정 능력을 이룬다.
갓 설립한 우리 노동조합이 이루어야 할 행정 과제 중에는 학교로부터 '근로시간 면제'를 받아내는 일이 있었다. 근로시간 면제란 노사가 합의한 한도 안에서 근무시간 중에 노동조합 업무를 해도 임금에 손실을 보지 않게 하는 제도다. 이렇게 노동조합 업무를 하는 사람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까닭은, 소극적인 관점으로 보면 노동조합 업무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고, 적극적인 관점으로 보면 노동조합의 존재가 노사 모두에게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 보면, 사측으로부터 돈과 시간을 지원받는 구조는 일정 부분 노동조합을 사측에 종속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근로시간 면제는 사측의 의무로 강제되지 않고 노사합의로 결정된다. 노동조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싶은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면제를 받아 조합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사측 입장에서는 인건비 지출이 늘어나니 동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칼자루는 대개 사측의 손에 있고, 실제로 수많은 직장의 노동조합이 근로시간 면제를 받지 못하고 개인의 시간과 돈을 들여 갖가지 활동을 한다.
어느 날, 교섭위원들과 회의를 했다. 우리는 학교 측에 요구할 사항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리 직장 최초의 교섭이다 보니 백 가지가 넘는 항목이 단체협약 요구안에 실렸다. 그리고 그중에 근로시간 면제에 대한 사항이 있었다. 한국어교육 업계로서도 선례가 없는 협상이니 우리들 스스로 노동조합 업무의 시간을 산정하고 임금을 보상하는 계산식을 의논했다. 문구의 표현을 다듬고, 전략을 논하고.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교섭위원 한 분이 물었다.
"지부장님, 그런데 근로시간 면제를 얻어내서 수업 안 하시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지 않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학생들과 대화가 성공적으로 오갔을 때의 기쁨, 하루하루의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을 알고 있다. 상대방이 그렇게 물었던 것도 내가 수업 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이미 노동조합 업무에 쏟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수업을 반으로 줄였다. 수업을 줄였다는 것은 그만큼 임금이 줄었다는 뜻이다. 사정을 아는 조합원들은 내가 노동조합 업무를 하는 까닭에 임금에 손해를 보지 말라고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주었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런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몇몇 인물의 희생이나 조합원 일반의 호의에 의존하지 않고 어느 누가 오더라도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춰야 좋은 조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이후에 노동조합의 일을 맡은 사람이 더 큰 혜택을 누리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노동조합은 근로시간 면제를 받아내었다. 덕분에 나는 임기 3년 중에서 마지막 1년은 근로시간 면제 제도에 따라 조합원 평균 수준의 임금을 보전받고 노동조합 일을 할 수 있었으며, 후임 지부장들은 임기 시작부터 그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근로시간을 면제받아 한국어 수업을 하지 않고 임금을 보전받으면서 노동조합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우리 노동조합이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이었을까? 학생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잃으면서까지? 평생 노동조합 일을 할 작정이 아니라면 언젠가 교실로 돌아가야 할 텐데?
한국어 수업을 좋아한다는 말.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무렵부터 들어왔다. 선배 선생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월급은 형편없지만 말야. 재미는 있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주 마약이 따로 없다니까. 그러니까 최 선생도 조심하라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고."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문장들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작은 말실수가 오해와 위험을 자아내는 바깥 세상과 달리, 교실 공간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오해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지식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무척 소중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도 다르면서 이렇게도 닮았음을 체험할 수 있다. 한편,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선사하는 보람도 소중하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운 단어와 문법을 활용해서 교실 밖에 나가, 고깃집에서 서비스를 받고, 한국인 아내를 웃게 하며, 잘못 고지된 요금을 처리하고서는 다음날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 제가 어제…!" 하며 들려주는 승전보들을 들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의 일을 맡아 여러 조합원을 만나 면담 시간을 가지면서 이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는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다. 고마운 학생들이 등장하는 소중한 추억들이 있고, 학생들이 만들어낸 기발한 한국어 문장을 자랑한다. "보세요. 이번 학기에 저희 반 학생 하나가 기특하게도 이런 문장을 만들어냈다니까요!" 이들은 교안에 적힌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다가 식사를 잊고, 아이를 재운 후에야 어깨를 펴면서 내일 수업을 준비할 여유를 얻고, "거 월급도 얼마 안 되는 일 그냥 포기해 버려" 같은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분해서 더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어째서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걸까. 이만큼이나 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아마 우리 노조는 지지 않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합원 면담을 마치곤 했다.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쓰이기도 했다. 때로는 노동조합의 일에 참여하기를 거절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집행부에 함께하자고 부탁을 드리면 거절의 의사를 밝히면서 "저는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요…"라고 하는 식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노동조합 집행부 사람들도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 이들도 노동조합 일이 수업에 소홀해지는 이유가 되지 않도록 발버둥을 쳤다. 자정 가까이 노조 회의를 마치고 나면 졸음을 쫓아가며 악착같이 수업 준비를 하던 우리 조합의 집행부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니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어 수업을 좋아한다는 말은 이렇게 변형되어 쓰이기도 했다. 우리 노동조합이 투쟁 도중에 파업을 결의했을 때, 몇몇 조합원들이 공개적으로 탈퇴 의사를 밝혔다. 교실과 학생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그 순간 파업에 나서는 조합원들은 교육자의 책무를 저버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 내가 진작에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 다같이 이야기할 공간을 마련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떠나가는 분들은 그냥 말없이 탈퇴하셨더라면 더 나았을 것을. 우리는 노동조합이란 직장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저 일 안하고 돈만 더 받으려는 몹쓸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듯이 비난하는 어떤 대중들의 손가락질을 잘 알고 있다. 때로는 외국인 학생들 역시 우리 노동조합의 투쟁을 비난하기도 했다. 곁에서 뜨겁게 지지하고 박수쳐 주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문제의 뿌리는 '수업'이 '투쟁'의 반대항으로 쓰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수업하는 사람'과 '투쟁하는 사람' 사이에 구분선이 그어지고, '교실'이란 장소는 누군가가 투쟁 현장에 부재했던 까닭을 뒷받침해주는 알리바이로 이용되며, 동시에 '투쟁'은 수업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의 일탈로 표현된다. 철도 기관사들이 파업을 하면 시민의 이동권을 위협한다고 비난받고, 학교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산재사고를 알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면 아이들의 밥그릇을 인질삼았다고 비난받는다. 이렇게 '수업하는 사람'과 '투쟁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논리에서는 투쟁 없이 온전히 일에 몰두하는 이들을 순수하고 성실하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투쟁하는 사람들은 직장을 사랑하지 않고 업무에 충실하지 않으며 결백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표현된다. 이런 틀 속에서는 일을 둘러싼 사회 구조에 무관심하고 오롯이 이 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서사가 인기를 얻는다.
나는 이렇게 의도의 불순함을 입증받으려 애쓰는 경쟁에 질렸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직장을 진실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서 노동조합을 옹호하는 주장에도 조금 지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억지로 이 일을 하게 되었더라도 그가 좋은 처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투쟁을 외면하고 기피하는 사람들도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것과 기꺼이 싸우듯이, 이 일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도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일을 좋아하지 않으나 일터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여 투쟁에 전력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나는 3년 간의 노동조합 업무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갔던 날을 기억한다. 처음 한국어 수업을 했던 2018년 봄의 마음이 다시 돌아왔다. 학생들의 이름을 출석부에 적고, 국적이나 생일을 적고, 처음 할 말을 고민했다. 빈 교실에 가서 모의 수업을 해보았다. 그러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한 학기를 마치는 날에 학생들과 그간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어느 학생은 멀리서 날마다 등교하느라 힘들었던 아침을 이야기하고, 어떤 학생은 고향에서 아버지께서 편찮으신데 어찌할 수가 없어 슬펐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고백했다.
"여러분, 사실 이번 학기는 저에게 아주 특별합니다. 저는 2019년에 한국어 선생님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고 노동조합 일을 했습니다. 이번 학기는 제가 노동조합 일을 마치고 수업을 다시 시작한 첫 학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제 첫 학생들이에요."
내가 말을 마치자 학생 두 명이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그치자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학생 하나가 대답했다. "제 나라에서는 이렇게 합니다. 군인이나 소방관처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직업을 밝히면 주위 사람들의 감사한 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노동조합 간부에게도 그렇습니다. 박수를 받습니다." 나는 매우 기뻤다. 이미 5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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