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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못난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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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못난이는 죄가 없다

식품학자가 푸는 지역경제 ①버려지는 농산물을 돈으로 바꾸는 식품과학

음식은 농부의 밭에서 시작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손과 기술을 거친다. 그 길목마다 식품과학이 숨어 있고, 바로 그 과학이 지역의 농산물을 더 오래, 더 값지게, 더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지역경제를 살리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번 〈식품학자가 푸는 지역경제〉 연재는 그 가능성을 세 편에 걸쳐 풀어 보려 한다. 첫 번째 글은 모양 때문에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과 부산물을 되살려 손실을 줄이는 이야기①, 두 번째 글은 발효와 가공으로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이야기②, 세 번째 글은 과학적 품질 관리로 지역 식품에 신뢰와 프리미엄을 입히는 이야기③다. 손실을 줄이고 가치를 더하고 신뢰로 값을 매기는 세 단계다. 거창한 정책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식품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한 사람으로서 우리 지역의 식탁과 살림에 보탬이 될 작은 과학의 쓸모를 함께 나누고 싶을뿐이다.

산지에 가 보면 가슴 아픈 장면을 종종 만난다. 멀쩡한 농산물이 밭 한쪽에 산처럼 쌓여 버려지는 모습이다. 맛도 영양도 매대에 오른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단지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비뚤거나 표면에 흠집이 났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농산물을 '못난이'라 부른다. 식품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장면이 늘 안타깝다. 못난이는 아무 죄가 없기 때문이다.

모양 때문에 버려지는 '돈'

문제는 이것이 감상의 차원이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라는 데 있다. 언론보도와 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채소·과일의 10~30%가 등급 외로 분류된다.

공급된 농식품 가운데 약 14%가 폐기되고 그 경제적 비용은 한 해 약 20조 원으로 추산된다. 더 뼈아픈 것은 버려지는 음식물의 상당 부분이 식탁에서가 아니라 생산·유통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크기와 흠집 때문에 팔리지 못하거나 판로를 찾지 못해 산지에서부터 버려지는 것이다.

이것은 세 겹의 손실이다. 첫째, 정성껏 기른 농가의 소득이 사라진다. 둘째, 그 농산물을 키우는 데 들어간 물과 흙과 에너지가 헛되이 쓰인다. 전 세계적으로 버려지는 식품은 연간 약 13억 톤, 온실가스 배출의 8~10%를 차지한다. 셋째, 우리 사회가 먹을 수 있었던 자원이 그냥 쓰레기가 된다. 모양 하나 때문에 농가의 돈이 지구의 자원이 사회의 먹거리가 동시에 사라지는 셈이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쓰임을 못 찾은 것

그런데 식품과학의 눈으로 보면 못난이와 농식품 부산물은 '쓰레기'가 아니라 '아직 쓰임을 찾지 못한 자원'이다. 모양이 망가졌을 뿐 그 안의 당분과 섬유질, 단백질과 기능성 성분은 그대로 살아 있다. 식품과학이 할 일은 바로 이 잠든 쓸모를 깨우는 것이다.

이것을 '푸드 업사이클링(food upcycling)'이라 부른다. 버려질 것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가치의 제품으로 되살리는 일이다.

이미 현실에서 인상적인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리하베스트는 맥주를 만들고 남은 보리 부산물(맥주박)을 고단백·고식이섬유 분말로 재가공해 '리너지'라는 식품 원료로 만들었다. 버려지던 찌꺼기가 영양 가득한 식재료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햇반을 만들고 남은 깨진 쌀 조각과 콩비지로 '익사이클 바삭칩'을 만들어 미국과 홍콩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버려지던 부산물이 수출 상품이 된 셈이다.

커피를 오래 연구해 온 입장에서 특히 눈여겨보는 것은 커피박이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나면 원두의 대부분은 찌꺼기로 남는다. 전국의 카페에서 매일 쏟아지는 그 양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 커피박에는 항산화 성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스타벅스는 커피박을 퇴비로 만들어 농산물을 기르고 그 농산물로 다시 식품을 만드는 순환 구조를 운영하며 커피박을 자원으로 인정받기까지 했다. 매일 버려지던 한 잔의 뒷모습이, 새로운 산업의 원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66조 원짜리 '버려진 시장'

이것이 단지 착한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푸드 업사이클링은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이다. 시장조사 자료에 따르면 세계 업사이클 식품 시장은 이미 약 66조 원(530억 달러) 규모이며 매년 4%대로 성장해 2032년에는 1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버려지던 것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여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대전에 기회가 있다고 본다. 흔히 푸드 업사이클링은 서울의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하는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이 일에 대전만큼 잘 맞는 도시도 드물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와 여러 대학을 품은 과학도시다. 어떤 부산물에 어떤 성분이 들었고 그것을 무슨 제품으로 풀어낼지를 밝혀낼 연구 역량이 이곳에 있다. 동시에 대전은 충청이라는 너른 농산물 산지의 한복판에 있어, 못난이 과일과 채소, 쌀겨와 콩비지 같은 부산물을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빵과 커피의 도시답게 매일 쏟아지는 커피박이라는 원료까지 손안에 있다.

다시 말해 푸드 업사이클링은 멀리 있는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대전의 청년들이 지금 도전할 수 있는 일이다. 과학도시의 연구 역량과 인근에서 나는 풍부한 원료와 자기 색으로 사업을 펼치려는 청년이 한곳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버려지던 손실은 대전에 남는 부가가치로,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로 바뀔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못난이를 가공품으로 되살리려면 적합한 가공 기술과 위생·품질 관리 그리고 그것을 팔아낼 판로와 브랜드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전의 대학과 연구기관, 식품 전문가의 역할이 있다. 어떤 부산물에 어떤 성분이 있고 그것을 어떤 제품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를 과학으로 밝혀 청년 창업가와 농가에 이어 주는 일이다. 나는 이것이 식품학자가 우리 지역 경제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살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못난이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멀쩡한 것을 모양만 보고 버려 온 우리의 습관과 그 쓸모를 찾아 주지 못한 기술의 게으름에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버리는 기술이 아니라 살리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살리는 기술이 대전에 뿌리내릴 때, 한 해 20조 원씩 버려지던 손실의 일부는 분명 우리 지역의 새로운 살림이 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선한 지역 농산물 자체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또 하나의 오래된 기술, '발효와 가공'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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