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가 주민의 건강과 의료 이용 문제에 대해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여러 사람의 생각도 그와 같았던 모양인지, 2027년 1월 1일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설치되고 새로운 재원을 활용한 "지역 주도 의료공백 해소 지원사업"을 시작한다. 지역에서는 주로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의료기관, 지원조직, 보건소 등이 머리를 맞대어 자율 예산을 어떤 사업에 배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촉박한 일정 속에서 다양한 조직과 인력이 참여하는 지역 단위 협력사업을 기획하는 것은 만만찮은 과제다. 더구나 의료는 그동안 지방정부가 자기 과제로 고민한 경험이 적은 영역이었다. 국민건강보험을 매개로 환자와 병원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고 간주해 온 탓이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각지에 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절에는 이러한 통념이 대체로 무리 없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비수도권 지역에서 의료는 분야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문제'로 일컫는 실정이 되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서비스 공급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상황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관계에 기반한 기획과 조정을 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방분권의 논리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일정 정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일은 분권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권한을 확대했다고 하여 곧바로 의사결정의 공간이 넓어졌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권한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역량"과 권한을 책임 있게 행사하도록 조건화하는 "책무성"이 함께 충족돼야 한다.
따라서 "지역 주도 의료공백 해소 지원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권한, 역량, 책무성 세 꼭지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오늘 살펴볼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문헌들을 검토하고 종합하여 함의를 도출한 것이다(☞논문 바로가기: 케이크를 보유하면서 동시에 먹을 수 있을까? 분권화된 보건의료 거버넌스에서 중앙집권화의 역설: 주제범위 문헌고찰)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건의료 분야에서 지역의 실질적인 의사결정 공간이 확대되려면 역량을 지원하고 일이 되게 만드는 중앙정부의 역할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화의 역설"로 개념화한다.
연구는 총 17개의 문헌을 선별하여 분권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보건의료 관리자의 인식에 관한 내용을 종합하였다. 분석을 위한 범주를 사전에 구조화하여 관리자들이 위임된 권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실질적인 의사결정 공간이 확대되었는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역량과 책무성은 어떠한지, 중앙과 지역의 관계는 어떠하며 중앙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 보건의료체계가 분권화되면서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관한 권한은 일정 정도 지역으로 위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질적인 의사결정 공간에 관한 경험은 조건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2005년 국가농촌보건사업을 추진하며 예산, 인력, 기능에 관한 권한을 일정 정도 지방정부로 이양했지만, 실제 관리자들의 체감은 크지 않았다. 위임된 권한이 효과적으로 실행된 사례에서는 지역 수준의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리더십 개발, 통합된 정보시스템, 다양한 행정적 지원 등이 관건이었다. 즉 이를 위한 중앙의 조정자 역할이 핵심 요인으로 부각된 것인데, 이러한 결과는 지역의 자율성과 중앙의 관리 기능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연구의 함의를 이렇게 정리한다. 이론적 차원에서 의사결정 공간은 전문적인 의사결정의 영역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지원체계 영역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문적 의사결정 영역에는 서비스 제공, 조직 운영에 관한 기획, 인력 관리 등이 포함된다. 지원체계 영역의 구성요소는 정보시스템, 행정 지원체계, 재정 구조 등이다. 전자에서는 지역의 자율성을 확대하더라도 후자는 중앙의 조정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 논지다.
따라서 실무적 차원에서 지역으로의 권한 이양이 중앙의 역할 축소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앙정부는 지역 수준의 실질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데이터를 통합하여 제때 제공하고, 리더십을 육성하며, 다양한 행정 지원체계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통제와 강압으로서 중앙집권이 아니라 일이 되게 하는 조정과 지원으로서 중앙집권을 지향해야 한다.
소개한 연구는 분석의 수준이 다소 불명확한 측면이 있다. 검토한 17건의 문헌이 국가마다 천차만별인 보건의료체계에서 수행되었다는 사정이 있을 테다. 논문을 읽어보면 저자의 초점은 병원 등 조직 수준에 좀 더 맞춰져 있는 듯도 하지만, 이를 한국의 보건의료 지방분권 맥락에서 읽어도 큰 무리는 없는 것 같다. 지역 주도 의료공백 해소 지원사업이 지역 단위에서 의료 서비스를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의 문제를 다루면서 의료기관이 기획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기도 하고, 조직의 역량과 책무성은 어느 단위에서건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지역이 의사결정 공간을 넓히기 위해 여러 고충을 겪고 있는 와중 "일단 해보면서 배운다"는 말은 말로서 옳다. 그러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학습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시행착오는 가능하면 겪지 않는 것이 좋고, 겪게 되더라도 이를 역량 강화로 연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이라는 말이 마땅한 어떤 책임을 방기하게 하는 핑계가 되어선 안 된다. 지역의 의료공백 해소를 정말 지역이 주도하게 하려면 이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중앙집권도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서지 정보
Ohrling M. (2026). Having and eating the cake? The centralisation paradox in decentralised healthcare governance: a scoping review. BMC health services research, 26(1), 1020. https://doi.org/10.1186/s12913-026-1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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