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구금됐던 한국인들의 귀국 일자가 늦춰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들의 미국 체류를 권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체류라며 단속을 벌였다가 실제 이들의 귀국으로 공장 건설 등 차질이 생기자 귀국을 만류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락가락하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11일 외교부는 조현 외교부 장관이 현지시간으로 10일 오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조업 부흥 노력에 기여하고자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미국에 온 우리 근로자들이 연행되는 과정이 공개되어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같이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데 대해 깊은 우려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범죄자가 아닌 만큼 수갑 등에 의한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하게 미국을 출국할 수 있도록 하고, 향후 미국 재방문에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미 행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어 "유사 사례 재발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국무부 워킹그룹의 신설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이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동 사안에 대한 한국민의 민감성을 이해하며, 특히 미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외교부는 루비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화답했다"며 "빠른 후속조치를 위해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양 장관의 회담은 당초 현지시간 9일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회담은 10일 오전에 진행됐다. 구금된 한국 국적자들의 애틀랜타 출발도 당초 10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하루 미뤄진 11일 정오로 미뤄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10일 "미측 사정으로 현지시간 10일 출발이 어렵게 됐다"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인 구금자들의 귀국을 말렸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 장관의 회담 이후 워싱턴 D.C의 주미 대한민국대사관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외교부 관계자는 "오늘 오전 조 장관이 루비오 장관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 측 사정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구금된 한국 국민이 모두 숙련된 인력이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일하면서 미국의 인력을 교육·훈련 시키는 방안과, 아니면 귀국하는 방안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알기 위해 귀국 절차를 일단 중단하라 지시했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우리 국민이 대단히 놀라고 지친 상태여서 먼저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 일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고, 미국(루비오 장관)도 우리 의견을 존중해 (구금 한국인이) 귀국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라며 귀국을 그대로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변심은 이들을 불법체류를 이유로 내쫓았을 때 공장 설립 등 추후 절차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인 5일(현지시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이들의 구금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다가 7일(현지시간) "이민법을 존중해 달라"라면서도 "매우 뛰어난 기술 인재들을 합법적으로 데려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만들도록 장려한다. 이를 위해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길을 열어줄 것"이라며 다소 달라진 입장을 내놨다.
억류된 한국인 2명을 포함해 구금 인원 5명을 법률 대리하고 있는 애틀랜타의 이민 변호사 찰스 쿡은 10일(현지시간) <AP> 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 내 어떤 회사도 배터리 공장에서 사용되는 기계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현장에 장비를 설치하거나 수리하기 위해 해외에서 필요한 인력이 와야 했으며, 미국에서 해당 작업을 교육하는 데 약 3~5년이 걸린다고 평가했는데 이같은 현실적 여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과 이민자의 체류에 대해 엄격히 단속하면서도 미국 내 투자를 활성화하고 싶다는 트럼프 정부의 모순된 정책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미국 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단속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생산 시설 및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과 이민자 단속 간의 높아지는 긴장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단속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기업들은 (미국의) 출입국 심사가 강화되는 가운데 직원들의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프로젝트 지연과 추가 비용지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태미 오버비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9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이번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서로 상충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며,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민 단속인가, 아니면 양질의 외국인 투자 유치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파크스트레티지'에서 동아시아 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션킹 수석부사장은 9일(현지시간) <뉴스위크>에 "미국의 법률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지아 사건은 외국 기업들에 큰 부담을 주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해외 투자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외국 정부에 실질적인 우려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귀국 전세기에는 구금된 한국인 중 현지에 남기를 희망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 국적자 316명과 외국 국적자 14명을 포함해 모두 330명이 탑승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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