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전화(戰火)가 잦아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타결하며 분쟁 종식을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고, 동결 자산이 풀리며, 추가 제재는 중단됐다. 워싱턴은 이를 '외교의 승리'로 자축하고 있다.
이 합의를 가장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곳은 브뤼셀도 서울도 아닐 것이다. 바로 평양이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을 상대하는 법을 스스로 학습해 왔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을 포기한 뒤 어떻게 됐는지를 보았고, 이라크의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했다고 선언한 뒤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 이란이 미국과 어떻게 타협했는지를 지켜봤다. 이 학습의 누적이 오늘 북한의 대미 전략을 구성한다.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하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이 이란에게서 배운 것
미-이란 합의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몇 가지 핵심 원칙이 보인다.
이란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농축 능력의 상한을 제한하고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받아냈다. 선(先) 포기가 아닌 단계적 상호 이행이었다. 이란은 핵 능력을 협상의 레버리지로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은 이란의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승인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북한은 이 방정식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사례는 북한에게 희망인 동시에 경계다.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했다. 북한은 이미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이 비대칭이 모든 것을 바꾼다. 북한의 계산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하지만, 그만큼 미국의 요구도 더 근본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이란의 사례에서 끌어낼 전략적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버티면 미국이 온다. 이란은 '최대 압박'을 견디며 협상 테이블을 뒤집었다. 북한은 이미 이 교훈을 체화하고 있다. 무응답과 무시가 때로는 가장 강력한 협상 전술이라는 것을. 김정은이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은 것은 판단의 실패가 아니라 전술적 침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핵은 포기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이란 합의는 비핵화가 아닌 핵 관리 협정이었다. 북한은 이 선례를 근거로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원칙 자체를 협상 테이블에서 해체하려 할 것이다. 북한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한 것은 단순한 국내용 선언이 아니라 협상 출발점을 못 박는 외교적 행위였다.
셋째, 경제가 아니라 안전이 먼저다. 이란이 최종적으로 원한 것은 경제 제재 해제였지만, 그 전제는 체제 안전 보장이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경제적 인센티브를 미끼로 던진다면 북한은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미국이 체제 전복을 포기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 조건이 맞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유는 구조적이다.
트럼프에게 북·미 회담은 외교적 치적이다. 국내외적으로 궁색한 처지에 있던 트럼프는 이란과의 합의를 탄력삼아 중간선거를 앞두고 또 하나의 '빅딜'을 원할 것이다. 북한과의 회담은 그 서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동기가 외교 구조와 맞아떨어지는 드문 국면이다.
북한에게도 지금은 나쁘지 않은 시점이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으로 체제 안정의 외부 지지대를 확보했고, 두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되고 있다. 협상 실패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과거보다 늘었다. 즉 북한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더라도 2019년 하노이처럼 조급하게 굴 이유가 없다.
이란 합의는 또한 미국 내 협상 반대 세력을 일부 무력화했다. '독재 정권과는 협상하지 말라'는 원칙론이 이란 사례 앞에서 힘을 잃은 셈이다. 같은 논리로 북한과의 협상을 막을 명분도 약해졌다.
북·미 정상회담의 한계: 넘기 어려운 벽들
그러나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까지의 거리는 아직 멀다. 이란과 북한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들이 있다.
핵의 질이 다르다.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채 협상했다. 북한은 수십 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 배치한 상태다.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와의 협상은 이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정식을 요구한다. 미국 내 안보 관료집단이 이란 수준의 타협을 북한에 적용하는 데 동의할 가능성은 낮다.
트럼프의 팀이 변수다. 2019년 하노이에서 협상을 결렬시킨 것은 주지하듯 트럼프 개인이 아니라 볼턴으로 대표되는 강경파 참모들이었다. 지금 트럼프 2기의 안보 라인 역시 북한과의 포괄적 타협에 우호적이지 않다. 트럼프가 회담을 원해도 그 결과물을 협정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내부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의 요구 수준이 미국이 줄 수 있는 것을 초과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주한미군 철수 또는 대폭 감축, 한미동맹의 실질적 해체, 그리고 핵보유국 지위의 사실상 인정일 것이다. 이란이 원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요구다. 트럼프라 해도 이 모두를 들어줄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워싱턴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노이의 그림자. 2019년 하노이 노딜은 양측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직접 만나고도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 굴욕의 기억이 북한로 하여금 다음 회담에서는 사전에 결과를 확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게 만들었을 것이다. 회담 자체보다 회담의 결과물을 사전에 합의하는 실무 협상이 훨씬 더 중요해진 이유다.
한국의 딜레마: 방관도 개입도 아닌 설계
이 복잡한 방정식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한-EU 공동성명이 보여준 것처럼, 지금 한국 외교는 진영의 언어를 그대로 떠안으며 스스로의 외교적 공간을 좁히고 있다. 북한이 이란 사례에서 학습하며 협상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는 동안, 한국은 20년 전과 같은 문구를 반복하며 대화의 입구를 닫고 있다.
북·미 회담이 성사되는 순간 한국은 세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방관하거나, 훼방하거나, 설계에 참여하거나. 앞의 두 선택은 한국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에서 방관자로 전락시킨다. 세 번째 길만이 한국의 국익을 지킬 수 있다.
그 설계에 참여하려면 지금 당장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내부 정비다. 대통령은 평화공존을 말하고 외교 문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전략의 분절을 끝내야 한다. 외교부·통일부·안보실의 언어가 대통령의 전략 방향 아래 하나로 수렴되지 않으면, 북·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발언권을 행사할 근거가 없다.
다른 하나는 프레임의 전환이다. 북한이 이란 사례에서 학습했다면, 한국도 같은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를 협상의 출발점으로 고집하는 한, 북한은 테이블에 앉지 않을 것이다.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과 해외 반출 금지부터 단기 목표로 설정하는 단계적 접근, 즉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말했던 그 언어를 실제 협상 전략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또 다른 하노이가 될 것인가?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만남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2018년 싱가포르 회담도, 2019년 하노이 회담도 만남은 있었다. 결과는 달랐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준비의 깊이다. 이란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순탄치 않았지만 수년에 걸친 실무 협상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이 만나기 전에 합의의 윤곽이 이미 그려져 있어야 한다. 북·미 회담이 하노이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무 협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진영의 언어에 갇혀 그 공간을 스스로 좁히고 있는가. 그것이 지금 한국 외교 앞에 놓인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강대국은 언제든 전략을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를 떠날 수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 공통의 운명이, 역설적으로, 대화의 가장 강력한 근거다.
평화중견국의 위상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전략적 공간의 깊이에서 나온다. 묻고싶다. 북한이 이란에게서 배우고 있는 동안, 한국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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