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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 가락] 전통공연, 어디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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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 가락] 전통공연, 어디서 볼까?

지치기 쉬운 초여름의 길목, 6월이 찾아왔다. 한낮의 햇볕이 제법 뜨거워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시원한 그늘이나 에어컨 바람이 반겨주는 실내 공간을 찾게 된다. 이 시기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극장과 전시장, 박물관 같은 곳들은 가장 완벽한 피서지 중 하나이다. 문득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번 주말에 전통공연 보러 가실래요?”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가장 먼저 어느 장소를 떠올리시는가?

서양 클래식이나 뮤지컬,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같은 대형 극장들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막상 ‘전통공연’을 보려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는 분들이 적지 않다. 서울의 국립국악원부터 지역의 시립국악단까지 오늘날 관객들은 과연 어디서 우리의 전통예술을 만나고 있을까? 오늘은 문화예술경영의 시선으로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전통예술 공연장’의 안과 밖을 함께 거닐어보고자 한다.

마당과 풍류방에서 전용 극장으로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음악과 춤은 서양식의 네모난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던 예술이 아니었다. 백성들이 신명나게 즐기던 판소리와 민요, 대동놀이는 사방이 트인 ‘마당’이 무대였고, 선비들이 풍류르 즐기던 정악은 아늑한 방 안인 ‘풍류방’이 공연장이었다. 자연과 호흡하거나, 연주자와 관객이 무릎을 맞출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는 것이 우리 예술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식 프로시니엄(액자형) 무대가 도입되면서 국악 역시 커다란 극장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거문고나 가야금, 대금 같은 전통 악기들은 서양의 오케스트라 악기에 비해 자연 음량이 작고 잔향이 부드러운 편이다. 확정 장치(마이크)를 크게 쓰면 악기 본연의 깊은 울림이 왜곡되기 쉽고, 그렇다고 일반 서양식 극장에서 연주하면 소리가 흩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국악 전용 공연장’이다. 마이크를 쓰지 않아도 악기 고유의 미세한 떨림과 성음이 객석 끝까지 자연스럽게 전달되도록 건축 음향을 설계한 공간이다. 그 중심에는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대한민국 국악의 허브, '국립국악원'이 있다. 예악당은 1996년에 건립한 734석 규모의 국악 전용 대극장으로 토담식 좌석배치와 방패연을 본뜬 음향판 등 전통미를 강조한 극장이다. 대규모 관현악을 소화하는 예악당부터 2017년 자연 음향 기반의 특화된 공연장으로 재개관한 230여 석 규모의 우면당, 그리고 전통 풍류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좌식 극장인 풍류사랑방까지 국악 전용 공연장은 우리 음악을 가장 '우리답게' 들을 수 있는 든든한 하드웨어가 되어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공연장마다 '담아내는 음악'이 다르다는 점이다. 궁중음악의 장엄함은 큰 무대에서, 풍류방 음악의 섬세함은 작은 자연 음향 공간에서, 신명나는 연희는 탁 트인 야외에서 음악의 결에 맞춰 공간이 설계된다. 옛 마당과 풍류방이 그러했듯 오늘의 전용 공연장도 음악의 성격에 꼭 맞는 그릇이 되어준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내부 ⓒ국립국악원

서울부터 지역까지, 우리동네 국악원 현황

문화예술경영학에서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연장 인프라'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본다. 인프라가 어디에, 어떻게 구축되어 있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문화적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날 국악 인프라는 서울에만 머물지 않고 전국으로 지평을 넓혀왔다.

국립국악원은 서울 본원 외에 3개의 지방 국악원(남원 국립민속국악원・진도 국립남도국악원・부산 국립부산국악원)을 설립해 지역 특색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각 지역 국악원이 그 지역의 음악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민속국악원은 남원을 중심으로 판소리를 비롯하여 고품격 창극 개발 등 민속예술 발전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춘향가의 고장 남원에 판소리 중심 국악원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속음악의 보고인 진도에 설립된 국립남도국악원은 굿과 향토민요 등 지역 음악문화를 전승·보존하며, 영남의 국립부산국악원은 2008년 10월에 개원해 동남권 전통예술의 거점이 되고 있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립 및 도립 국악단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전의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국공립국악원들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가장 쉽게 전통예술을 접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역 국악 공연장들은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것을 넘어, 지역 밀착형 교육 프로그램이나 방학 특강 등을 통해 미래의 관객을 길러내는 문화 거점의 역할을 수행한다.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내 집 앞 공연장에서 최고의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는 지역 문화 분권과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공연 접근성과 지역 편차, 그리고 ‘공간 기획’의 과제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 뒤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첫째는 '공연 접근성의 지역 편차'다. 국립 및 시립 국악 전용 공연장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보니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 하드웨어가 없는 곳에 양질의 소프트웨어(공연)가 지속해서 공급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방곡곡 찾아가는 예술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용 공연장이 주는 완벽한 소리의 감동을 온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4월 칼럼에서 어린이 국악 교육의 지역 격차를 짚었는데 공연 향유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셈이다.

둘째는 '심리적 문턱'이다. 사실 이것이 더 까다로운 문제일 수 있다. 공연장이 가까이 있어도 '국악은 어렵다', '거긴 전문가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으면 관객의 발걸음은 향하지 않는다. 클래식 공연장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면서, 국악 공연장 앞에서는 망설이게 되는 보이지 않는 문턱이 물리적 거리보다 높을 때가 많다.

셋째는 '공간 기획(Space Planning)'의 중요성이다. 문화예술경영에서 극장은 단순히 공연 시간 전후로 문을 열고 닫는 '건물'이 아니다. 관객이 공연장 마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을 나설 때까지의 모든 '경험'을 디자인하는 곳이어야 한다. "국악원은 왠지 엄숙하고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뜨릴 수 있도록, 평소에도 시민들이 찾아와 쉬어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낮 시간대를 활용한 마티네 콘서트, 로비 공간을 활용한 작은 전시나 악기 체험존, 그리고 주변 자연경관과 극장을 연결하는 야외 축제 등 공간의 가치를 다각화하는 '소프트웨어의 힘'이 결합할 때 비로소 극장은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국악 전용 공연장은 아니지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공연장과 전시실, 라이브러리, 어린이 공간, 광장 등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이러한 방향에 좋은 참고가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경 ⓒ광주광역시

공연장은 단순히 예술가들이 기량을 뽐내는 무대를 넘어 당대의 관객과 예술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문화의 산실'이다. 우리 조상들이 마당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추임새를 넣고, 풍류방에서 거문고 줄을 고르며 마음을 나눴던 것처럼 현대의 국악 공연장 역시 우리 시대의 풍류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번 6월에는 늘 가던 영화관이나 카페 대신 가까운 지역의 국악 공연장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국립국악원 홈페이지나 각 지역 시립국악원의 예매 사이트를 둘러보면 초여름 밤을 시원하고 청량하게 채워줄 다채로운 정기공연과 기획무대들이 기다리고 있다.

마이크를 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금 소리가 극장 벽면을 타고 어떻게 내 귀에 와닿는지, 대금의 맑은 울림이 어떻게 극장 내부의 공기를 바꾸어 놓는지 온몸으로 감각해보시길 바란다. 극장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 흐르는 우리 음악의 깊은 잔향을 느끼는 순간 올여름의 시작은 여느 해보다 훨씬 특별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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