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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면 제조업은 파업 불가"…'삼성 파업 제한' 법원에 '헌법 부정'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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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리면 제조업은 파업 불가"…'삼성 파업 제한' 법원에 '헌법 부정' 비판

삼성 측 주장 대부분 인용, 한 달 전 인천지법 결정과도 반대

법원이 삼성전자의 노조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결정을 일부 인용한 데 대해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부정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단체행동권은 헌법에 명시됐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함에도,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헌법상 권리가 아닌 "사용자의 영업적 이익"을 우선해 노동자의 파업을 사실상 금지했다는 이유에서다.

수원지법 민사31부(재판장 신우정, 배석 주우현·이나리)는 지난 18일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일부 인용 결정을 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가 지목한 모든 시설은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는 '안전보호시설'이고, 지목된 모든 공정 역시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는 '보안작업'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목된 모든 시설과 공정이 평상시와 같은 수준의 인력과 가동시간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이를 어길 시 하루당 1억 원씩,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장과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1000만 원씩 삼성전자에 내게 하는 이행강제금도 부과했다.

삼성이 지목한 모든 시설이 '안전보호시설'?"이 논리면 제조업은 파업 불가"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는 먼저 삼성전자가 지목한 △방재 △배기·배수 △화학물질 공급 △전력 공급 △관제 등 시설 모두를 ‘안전보호시설’이라고 인정했다. 노동조합법 42조 2항은 안전보호시설의 정상적인 유지·운영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재판부는 그러나 각각의 시설에 대한 구체적 인정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시설의 특성, 목적, 구조 등에 비춰 각 시설이 정상적으로 유지·운영되지 않을 경우 화재, 폭발사고, 유독가스 누출, 정전 등으로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해 위험을 야기할 우려가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하다"고만 적었다.

재판부는 '정상적 운영'의 의미를 "어떤 위험 발생의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는 것, 즉 평상시와 동일한 운영상태"라고 정의했다. 정상 운영을 위한 인력의 범위에 대해서도 "생산 담당과 안전 담당을 나눌 수 있다 해도, 생산 시설에서 쟁의행위가 허용되면 사실상 정상적인 유지·운영은 불가능하다"며 뭉뚱그려 넓게 판단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19일 논평에서 이 논리대로라면 "산업현장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안전보호시설에 해당된다"고 비판했다. "어느 사업장이든 가동이 중단되면 일정 수준의 위험요소는 발생하기 마련"이며 "안전보호시설의 본질은 그 시설이 사람의 안전 보호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설치·운영되고 있는지 여부에 달렸지, 시설 정지에 따른 부수적 위험 가능성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민변 노동위는 "노조법이 필수유지업무에 대해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을 명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안전보호시설에 대한 의무 수준을 필수유지업무보다도 가중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 "헌법상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부정하는 해석"이라고 재판부 결정을 비판했다.

▲19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노동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 중단 촉구를 내용으로 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안작업'도 삼성 주장 그대로 수용… 한 달 전 판례와도 '딴판'

재판부는 또 △설비관리(내부 배관관리, 마스크 세정설비 약액 관리, 웨이퍼 배출 관리) △제조 관리(웨이퍼 정체 관리) △공정 관리(웨이퍼 정체 관리, 공정 불량 발생 모니터링 및 후속조치) △AI센터 시스템 관리 등 반도체 공장의 주요 공정 대부분이 '보안작업'이라는 삼성전자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노조법 제38조 제2항이 규정한 보안작업은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으로 "쟁의행위 기간 중에도 정상 수행돼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의 이번 결정은 보안작업을 '필요 최소한'으로만 인정한 기존 결정례, 행정해석과 다르다.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4월 23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노조를 상대로 낸 쟁의행위금지 가처분 결정에서도 인천지법 민사21부(재판장 유아람, 배석 박지원·정일두)는 사측이 주장한 9개 업무 중 3개 업무만 보안작업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쟁의제한 작업의 범위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며 "(공정 마무리 단계에서) 약간의 추가 작업만으로 원료·제품의 폐기를 방지할 수 있는 공정"만을 보안작업으로 판단했다.

수범자인 노조 측의 '형사처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보안작업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보안작업 정상 수행 의무를 위반한 이는 노조법 제91조에 따라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인천지법 재판부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법을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 해석을 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수원지법 결정문엔 없는 내용이다.

과거 고용노동부가 파업으로 인해 마필관리사가 경주마를 훈련시키고 먹이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혈액선별검사 중단으로 혈액공급이 장기간 막히는 경우라도 이를 보안작업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한 일도 있었다.

96년 총파업 독소소항이었는데… '사측 영업권' 헌법 위 군림

더욱이 노조법상 보안작업 조항은 1996~1997년 연인원 380여만 명의 총파업 참가를 일으킨 노동관계법(현 노조법) '날치기 통과' 당시 추가된 독소조항 중 하나로, 법조계와 학계 일각에선 꾸준히 폐지를 주장해 왔다.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한영애 전 의원은 "이 조항은 특히 식품제조업 등에서 전혀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해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독소조항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변질·부패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설정할지 모법에 규정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정부 행정에 맡겨져 우려가 더 크다"고 밝혔다.

민변 노동위는 나아가 이번 재판부가 "헌법상 노동3권에 대해 적대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사용자의 조업계속의 자유나 기업시설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노조 주장이 '사용자의 사업수행권을 정면으로 침해한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썼다.

민변 노동위는 이에 "단체행동권 본질은, 사용자에게 경제적 불이익을 발생시킴으로써 단체교섭상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고, 사용자의 경제적 손실은 쟁의행위의 '본질'"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를 외면한 채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사용자의 영업적 이익을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보다 앞세웠다"며 "노동3권을 사용자의 영업 자유에 종속된 단순한 제약요소로 격하시키는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반도체 부문) 피플팀장(왼쪽부터),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이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사후조정 첫날 회의를 마친 뒤 협상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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