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토박이인 박영선(54, 가명) 씨는 석탄 화력발전소 내 청소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5년 전 이 일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태안 시내에서 가게를 운영했지만 자식 때문에 접었다. 첫째가 운동을 위해 강원도 태백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야만 했다. 박영선 씨는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태백에서 3년 동안 함께 생활했고 자식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 태안으로 돌아왔다.
생활을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지만 다시 가게를 열기는 어려웠다. 나이도 있어 직장에 들어가기 어려웠다. 식당에서 일하려 해도 사람을 뽑지 않았다. 태안 식당 대다수가 사장 혼자 일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 발전소에서 '청소' 직군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접했다. 건물의 사무실이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을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청소하러 간 첫날, 발전소 내부를 돌아다니는데, 마치 미로 속에 있는 듯했다. 보일러에 터빈까지, 선임이 구구절절 설명을 해줘도 모든 게 낯설었다. 태안에서 평생 살아온 그녀였으나 이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한여름 40도 넘는 온도에서 청소하면 땀이 비오듯 쏟아져
석탄이 원료이다 보니 발전소 내에는 타기 전의 탄가루와 타고 남은 재가 늘 날린다. 실시간으로 쌓이는 이들을 쓸고 닦는 일을 한다. 내부는 무척 덥다. 마스크에 헬멧, 안전화 등을 착용하고 청소를 하다보면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한여름에는 40도를 가뿐히 넘는다. 쉬는 시간에는 소금물이 필수다. 발전소 소음 때문에 귀마개도 필수다. 가끔 일하다 보면 석탄재가 비 오듯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때는 그것이 다 떨어질 때까지 어딘가에 피신해 있어야 한다.
나이가 54살이지만 청소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어린 편이다. 이곳 청소노동자의 평균 나이는 57세다. 63세가 정년퇴직으로 임금은 초봉이 3700만 원. 지역 일자리로는 괜찮은 편이다. 환경 수당, 연차수당 등이 붙는다.
워낙 발전소가 크다 보니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총 10호기 중에는 18층 규모도 있다. 발전소 청소 업무는 약 100명이 하고 있다. 대략 2호기 당 약 10명이 내부 구역을 나눠 담당하고 있다. 박영선 씨는 11명의 동료들과 발전소 1호기와 2호기를 담당하고 있다.
작년 12월 1호기가 폐쇄되면서 3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일자리를 잃은 3명은 그나마 다른 호기의 퇴직자 자리가 있어 그쪽으로 배치됐다. 회사는 화력발전소 폐지 결정이 난 이후부터 인원 보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폐쇄로 사라진 일자리를 퇴직 등 자연 감소로 조정하는 식이다. 정 인력이 필요할 때는 기간제 직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2호기가 올해 폐쇄되면 또다시 유휴 인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박영선 씨가 다니는 회사는 20109년에 만든 한국서부발전의 자회사다. 김용균 씨 참사가 발생한 이후, 발전소 내 청소, 경비, 소방 등을 담당한 용역회사들을 하나로 모아 만들었다. 서부발전에서 100% 출자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만든 회사인데 오히려 계약직이 늘고 있는 셈이다.
소소한 문제도 생긴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하는데 발전소가 워낙 구석에 있다 보니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수가 없다. 청소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버스 2대를 계약했다. 한 달에 12~14만 원의 비용을 내고 있다. 퇴직자가 늘어나면 비용이 늘어나고 충원되면 줄어드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이곳에서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고령의 여성, 그리고 태안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화력발전소가 폐쇄된 뒤, 타 지역에 만들어지는 LNG 발전소에서 청소 일자리가 나와도 가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발전소 폐지되면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져
영선 씨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유민경(가명, 55) 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태안이 고향이 남편이 내려와 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내려왔다. 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경단녀'가 됐다. 태안에 내려와 먹고 살기 위해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어린이집에 취업했다. 그렇게 1년쯤 조리사로 일하다가 발전소에 경비(보안)직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경비 직무는 발전소 출입자 통제와 출입증 확인, CCTV 모니터링 및 이상 상황 대응, 야간 순찰과 보안 점검, 특수경비 업무 등으로 나뉜다.
유민경 씨는 발전소 정문 출입구를 담당하고 있다. 발전소의 출입구는 총 3곳으로 24시간 내내 경비가 상주해 있는데, 84명의 특수경비원이 4조 2교대로, 한 조에 21명씩 '주간-야간-비번' 순으로 근무한다. 그나마 2019년 자회사로 되기 전에는 3조 2교대로 근무했다.
일하다보면 직원들과 자주 부딪힌다. 발전소가 국가보안시설인지라 정문울 지나가려면 신분증을 제출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자기 회사에 자기가 들어가는데 왜 검문을 하느냐며 경비인 유민경 씨를 마뜩잖게 쳐다보기 일쑤다. '니네가 뭔데 나를 막아' 이런 식이다.
그렇다 보니 일을 할 때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다. 수시로 직원들이 그만두는데 대다수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20~30대 청년들이다.
사실 젊은이들에겐 태안이라는 곳이 작기만 하다. 충청남도 내에서도 교통 접근성이 낮고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 태안이다. 식당도 저녁 8~9시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월급은 지방 기업치고는 괜찮은 수준이나 방값에 식비, 차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층 대다수가 타 지역에서 온 이들이다. 우스갯소리로 부모님 집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더 낫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발전소 폐지가 결정되면서 젊은층 이탈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젊은 친구들은 결혼이나 집 구매를 앞두고 태안에 정착해도 괜찮은가 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발전소가 폐쇄되면 지역경제는 침체되고 부동산 가치도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전소로 출근하는 이들 중에는 서산에 집을 구하는 이들도 꽤 있는 편이다.
게다가 태안 지역은 발전소 중심의 산업구조로 양질의 일자리가 제한적이며 고용을 흡수할 수 있는 대체 산업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태안에 풍력발전소가 건설되면, 그곳에 취업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 태안 서쪽 해역에 1.4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3개 단지가 만들어지나 일자리는 370여 개에 불과하다. 태안 화력발전소 1~10기에는 약 1348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사라지는 일자리의 약 4분의 1 수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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