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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게임에는 '진짜 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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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게임에는 '진짜 운'이 없다

[게임필리아] 운의 진화, 신의 뜻에서 개인 맞춤형 알고리즘으로

게임에 있어 '운'은 얼마나 중요할까? 꼭 필요한 것일까? 오늘날 게임의 '티어'나 '랭킹', 그러니까 게임의 기술/실력이 지니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게임에 있어 운의 요소는 썩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정정당당하게 자웅을 겨뤄야 할 게임에서 승패가 운으로 갈릴 경우 패배자는 그 결과에 순순히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단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요행으로 얻은 결과는 정당한 성취가 아니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이 공유하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운의 게임과 기술의 게임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진동하면서 발전해온 과정을 (오락장치로서) 게임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운의 게임쪽으로 축이 많이 기울게 될 때 게임은 도박장치화 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되더라는 아픈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에서 운을 극단적으로 배제해버리면 - 즉 승패의 결과에 운이나 우연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만들면 - 게임이 일종의 훈련 시뮬레이터가 되어버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그러한 게임에서는 '뉴비(신규 플레이어)'들의 진입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종국에는 고인물들만 득실거리는 세계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이처럼 운의 게임성은 기술의 게임성과의 조율 속에서 재미를 위해 적절한 밸런스를 맞춰주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물론 게임이라는 놀이에 있어 '운'의 의미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운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 놀이에 임한 모두를 '평등하게'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즉 주사위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운, 우연, 그리고 확률의 역사

도박의 역사는 운의 게임이 지닌 '평등'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그 역사는 순수하게 무작위적인 운의 시대로부터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우연의 시대로의 이동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동물 뼈로 만든 주사위 같은 유물을 보면 도박 같은 놀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음이 분명한데, 주사위로 대표되는 운의 게임은 고대인들에게 '신의 말씀'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들은 무작위적인 사건이었고, 이는 인간이 개입할 틈 없이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곧 신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신의 계획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이었고, 따라서 우연이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었다.

종교적 신앙으로부터 우연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은 17세기에 중상주의가 도래하고 세속적인 동기에서 위험(risk)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부상하면서부터다. 해상 무역의 발달로 사람들은 항해 중에 우연히 발생하는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수학, 그 중에서도 확률 이론의 발전이다. 과학적인 확률 계산이 발전하면서 우연은 '신의 뜻'으로부터 '지식의 부재'로 점차 그 의미가 바뀌어간다. 대항해시대로부터 시작된 이 과정에서 축적된 부를 기반으로 새로운 중간계층(상인, 제조업자 등)이 부상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봉건체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이 바로 도박이다.

물론 도박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 시기 도박의 유행은 전례없는 수준이었다. 여기에는 상업의 발달로 주식, 보험 등의 금융 상품이 출범하면서 투기 수요가 고양되고 있던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다(그 유명한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이 바로 이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귀족들은 내일의 날씨나 유명인의 수명 등 별 사소한 것을 두고 내기를 벌이곤 했고, 아예 도박판을 벌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귀족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가 돈을 따기 위함이 아니라 - 물론 돈을 따고 싶었던 귀족도 없진 않았겠지만 이는 '귀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 돈에 구애받지 않는 대범함과 명예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일반 하층 계급 사이에서는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복권이나 선술집 도박장 등이 크게 유행했다. 노동 윤리를 해치고 질서를 교란한다며 국가적으로 법으로 금지하여 통제했음에도, 현실적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 최소한 그렇다고 여겨지는 - 도박의 유행은 막을 수 없었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도박이 지닌 매력은 신분제의 모순을 체감하기 시작한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주사위 앞에서의 절대적 평등'이 주는 쾌감에서 기인했다. 중상주의의 도래로 굳건했던 봉건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격변의 시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운을 통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회에 대한 믿음이 도박을 향한 강렬한 충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기 도박의 유행에 있어 운의 게임이 지닌 '평등성'은 핵심이었다 할 수 있겠다.

ⓒHistorical Picture Archive

19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인 신분제는 (형식상으로나마) 해체되었으나, 현실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빈부격차와 불평등은 극도로 심화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슬롯머신이나 복권 등은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그래서 단번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합법적으로) 준다는 점에서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했고, 관련 산업은 크게 번성했다(오락장치로서 게임의 역사가 본격화되는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러한 번성에 있어 슬롯머신에 동전을 넣는 순간 만큼은 누구나 동일한 확률을 마주하는 '운의 평등'이 전제되어 있음은 두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만약 슬롯머신에서 잿팟에 당첨될 확률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자).

물론 우리 모두 알고 있듯 그러한 기대는 신기루와 같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본격화하는 도박의 산업화는 철저하게 확률 이론에 따라 설계되었다. 대수의 법칙상 카지노라는 공간에서 개인 도박자가 승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전제 하에서 나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기에 카지노, 경마장, 슬롯머신 등의 대중 오락/도박산업이 번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리하자면 고대와 중세 시대 신의 말씀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신비롭고 순수했던 '운'은 17세기 수학의 발전으로 샅샅이 해체된 후 19세기에 이르러 확률에 기반한 산업화 과정을 거쳐 통제 가능한 이윤 창출의 매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굳이 역사적 발전 과정을 훑지 않더라도 도박이 그것에 빠진 개인과 사회에 가져오는 각종 해악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다만 여기서 그 역사를 통해 확인하고자 한 것은, 인간이 도박이라는 운의 게임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무엇인가라는 부분이다. 막대한 부를 빠르고 쉽게 벌 수 있다는 표면적 이유 아래, 그 오랜 세월동안 인간은 왜 주사위 놀이에 계속해서 매혹되어왔던 것인가. 결국 '주사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전제야말로 인간이 그 오래 전의 옛날서부터 오늘날까지도 운의 게임에 매료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이자 의미인 것이다.

나아가 운의 게임이 지닌 고유한 평등성이 변화 무쌍한 변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들로하여금 그 불확실성의 세계를 맞이하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동성을 제공해주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견고했던 봉건 체제를 흔들기 시작하는 중상주의의 발흥과 그로부터 근대적 자본주의 시대까지 이르는 변동의 시간 속에서 도박을 위시한 다양한 운의 게임이 지닌 '평등성'이란 그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틈을 내어 기회를 만들어내고자 도전하도록 추동하는 힘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운'의 다른 이름은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필연 속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게임 속 운을 본다면 랜덤한 무작위성이 사실상 거세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앞서 도박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17세기부터 이미 순수한 무작위성의 운은 탈신비화되기 시작했고,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면서부터는 확률 계산에 따라 철저하게 통제된 이윤 창출의 매개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의 도박 산업은 최소한 그 플레이어의 신분이나 지갑 사정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성만큼은 고수하고 있었다. 즉 슬롯머신에 동전을 넣는 순간 만큼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확률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게임은 이야기가 다르다. 오늘날 게임 속 운(과 우연)이 철저하게 '개인 맞춤화'되어 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게임 속에서 어떤 상자를 열거나 뽑기 버튼을 누를 때 도출되는 결과는 무작위적인 자연의 우연이 아니고 고정된 확률로 일괄적으로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게임 속에서 했던 모든 행위, 모든 결정, 지갑 사정, 이탈 확률 등을 낱낱이 분석한 후 해당 시점에 이용자를 가장 오래 붙들어 놓고 결제를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확률'이 배정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말하자면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블랙박스 안에서 이용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유도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연산된,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필연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신의 뜻이 절대적이었기에 우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옛날 '필연의 세계'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디지털) 필연의 세계를 움직이는 배후가 신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기술이라는 점이겠다. 최첨단 데이터 기술로 짜이는 '개인맞춤형' 확률의 그 촘촘한 배정 속에서 우연적인 틈새를 엿볼 기회라는 게 인간 플레이어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인간은 주체적으로 놀이하는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산업을 지탱하는 알고리즘의 동력 유지를 위해 버튼을 누르도록 길들여진 '(놀이)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AI의 범람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오늘날의 우리가 맞닥뜨린 인류사적 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나보라

게임을 연구한다. 게임플레이는 어렸을 때부터 해왔지만 게임 연구를 접한 것은 대학원에 들어와 우연히 게임학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게임,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대표 저서로는 <게임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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