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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뱃속의 쥐'와 한국 정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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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뱃속의 쥐'와 한국 정치의 미래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인간은 청소년기와 사회 초년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을 형성하고, 그것을 평생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회의 가치관은 기존 세대가 새로운 생각에 설득되어 바뀌기보다, 낡은 세대가 퇴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변한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서구 사회의 가치가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피파 노리스는 이를 '뱀 뱃속의 쥐'라는 인구학적 비유로 설명했다. 비단뱀이 삼킨 쥐는 몸통을 따라 천천히 이동할 뿐, 순식간에 소화되어 살이 되지는 않는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거대한 이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청년들이 어떤 가치관을 품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정치 지형도 서서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20·30세대는 40·50대가 된 지금도 진보 성향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개혁과 인권의 가치를 내면화한 이들은 오늘날 진보 진영의 가장 단단한 지지층을 이루며 뱀의 몸통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민주당이 지금 누리는 정치적 우위는 상당 부분 이 세대가 만들어낸 인구학적 흐름 위에 서 있다.

2030남성, '보수화' 아닌 '진보 이동 차단'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금 뱀의 몸통을 지나고 있는 쥐는 머지않아 꼬리, 곧 고령층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뒤따라오는 2030세대는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깊은 성별 균열이 세대 내부를 가르고 있다. 2025년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58%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20대 남성의 지지는 24%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의 내란 사태와 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충격을 겪고도 20대 남성은 김문수·이준석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이러한 흐름은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현상을 단순히 '청년 보수화'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윤석열 정부에 일찌감치 등을 돌렸고, 탄핵에도 찬성했다. 이들의 선택은 '보수화'라기보다 '진보로의 이동 차단'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하다.

차단의 기제는 여러 측면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세대 남성의 진짜 형성기 경험은 2024년의 내란이 아니라 그 앞 10년의 생존경쟁과 젠더 갈등이었다. 내란이 닥쳤을 때 그들의 쥐는 이미 형태가 굳어져 있었다. 내란의 충격은 새로운 가치관으로 각인되는 대신, 이미 설정된 프레임을 통과하며 굴절됐다. 내란 사태 이후 탄핵 광장 자체가 젠더화된 것도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응원봉의 거리가 여성의 공간으로 코드화되면서, 거기 합류하는 일이 젠더 전쟁의 반대편에 서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정치를 읽는 핵심 기준은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공정·능력·역차별'이라는 점이다. 치솟는 집값, 치열한 취업 경쟁, 계층 이동의 어려움에다 병역 의무와 젠더 갈등까지 겹치며 이들은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요컨대 청년층의 쥐는 성별로 쪼개진 기형의 형태로 뱀의 입구에 걸려 있다.

30대 여성,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의 충돌 시작

주목할 대목은 2030 여성에서도 미세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는 점이다.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56.7%는 정원오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1년 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얻은 58.1%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3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는 51.3%에 그쳤다. 가까스로 우위를 유지하긴 했으나, 대선 때(57.3%)보다 6%포인트가량 내려앉았다.

이 미세한 균열의 배경은 무엇일까. 30대 여성은 생애주기상 가장 절박한 시기에 와 있다. 결혼과 출산, 주택 구입, 자녀 교육 등과 맞닥뜨리는 시기다. 정치적 가치만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구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연령대다. 30대 여성은 여전히 성평등, 인권, 차별 반대 등에 깊이 공감하지만 동시에 아파트 가격, 은행 대출, 자산 형성에도 매우 민감하다. 정치적으로 '가치 투표'와 '자산 투표'가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여성 유권자들의 민주당 지지도가 높은 것은 민주화 서사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다. 삶의 경험 속에서 민주당이 그나마 자신들의 이해와 가치를 더 잘 대변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거와 자산, 세금과 교육 같은 현실의 문제가 전면으로 떠오르면서 지지의 결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30대 여성의 표심은, 진보 성향을 품고 이동하던 여성층이 생애주기와 자산이라는 관문을 지나며 방향을 트는 첫 장면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여성이 민주당의 영원한 지지 기반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는 착각이라는 점이다.

코스피 호황도 양날의 칼이다. 자산시장의 상승은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는 큰 보상을 안기지만, 종잣돈이 없는 청년에게는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만 키운다. 사람은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박탈감에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 박탈감의 청구서는 결국 정부여당에게 돌아온다.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서 밀려났다고 느끼는 청년에게 번쩍이는 호황의 불빛은 '나는 또 뒤처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만약 장세가 급격히 흔들리면서 뒤늦게 빚을 내 올라탄 청년층이 시장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인구학적 우위 증발 위기

지금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40·50대지만 한국 정치의 미래는 20·30대가 결정한다. 그들은 민주주의보다 공정을, 이념보다 자산 형성의 기회를, 역사보다 미래를 더 절박하게 바라본다. 지금의 성별 균열과 박탈감이 한때의 청년기 현상에 그치지 않고 세대의 각인으로 굳어진다면, 민주당이 누려온 인구학적 우위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것은 민주당에게는 재앙이고, 반대편에는 가뭄의 단비다. 2028년 총선과 그 이후의 대선은 바로 이 쥐가 어느 쪽에 자리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 민주당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정치세력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려면 기존 서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문법'을 세워야 한다.

첫째, 민주주의 언어와 공정의 언어를 한 데 묶어야 한다. 청년들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민주주의가 삶에서 어떤 공정한 기회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묻고 있다. 민주주의를 절차와 제도를 넘어 기회 불평등을 바로잡는 정치로 재정의하고, 공정성 담론을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흡수해야 한다.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전선을 '공정 대 반칙'이라는 새로운 전선으로 바꾸지 못하면,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청년에게는 기성세대의 향수로만 들릴 것이다.

둘째, 청년 세대의 자산 형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의 뿌리는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잃었다는 데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전망과 믿음이다. 주택과 금융, 창업과 노동시장 정책 전반을 통해 "노력하면 자산을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누구나 자산 형성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성장의 과실이 기득권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자본시장 호황의 혜택이 노동자와 청년에게도 돌아가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셋째, 청년의 상처는 물질적 보상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세대'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아무리 많은 지원도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분배를 넘어선 '인정의 정치'다. 청년들의 불안과 분노를 사회적 고통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정치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인정의 정치'란 분노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진짜 원천을 함께 응시하며 해법을 찾는 일이다. 청년들이 서로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같은 구조적 문제를 마주한 동료로 연대할 수 있도록 진보의 언어와 정치 안에 새로운 의제와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도덕적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586세대는 더 이상 광장의 약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자 자산 보유층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는 서사가 현재의 기득권과 겹쳐지는 순간 급격히 설득력을 잃는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려는 정당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정당이 그들과 미래를 함께할 수 있다.

다섯째, 젠더 갈등의 정치를 넘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정치는 젠더 갈등에 지나치게 포획돼 왔다. 여성의 권익과 성평등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정치가 성별만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면 연대의 공간은 좁아진다. 이제는 남성과 여성을 함께 아우르는 공통의 사회경제적 의제를 복원해야 한다. 젠더 정의를 특정 성별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존엄과 공정의 문제로 다시 세우고, 주거와 일자리, 불안정 노동, 돌봄 같은 의제를 통해 청년 전체를 연결하는 물질적 공통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갈라졌던 두 마리의 쥐가 다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열린다.

'미래의 쥐'를 둘러싼 장기전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장기적 가치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정치권의 시선은 늘 눈앞의 선거에 머물기 쉽다. 그러나 '뱀 뱃속의 쥐'가 보여주는 것은 정치의 시간이 선거 주기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정치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10대, 아직 가치관이 굳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20년, 30년의 정치 지형이 달라진다. 미래를 바꾸려면 다음 세대를 향해 씨앗을 뿌려야 한다. 정치는 한 번의 승부가 아니라, '미래의 쥐'를 어떤 가치로 키워낼 것인가를 둘러싼 긴 여정이다.

비단뱀의 뱃속에서 젊은 쥐는 이미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이 쥐가 몸통을 지나 꼬리 끝에 이를 때, 한국 정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지금의 균열을 방치한 채 세월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2028년 총선과 그 이후의 대선은 단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승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지,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떤 언어로 새길 것인지를 묻는 실존적 심판대다. 정치는 흘러가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를 직시하고 궤도를 수정하는 결단이다. 허락된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역사의 시계추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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