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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나무호' 폭발 빌미로 한국 압박…호르무즈에서 한국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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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나무호' 폭발 빌미로 한국 압박…호르무즈에서 한국의 길을 묻다

[원동욱의 외교광장] 한국은 '참전'이 아니라 '평화의 설계'를 선택해야 한다

1.

지난 4일 밤, 호르무즈 해협 UAE 인근 해역에 정박 중이던 HMM의 컨테이너선 '나무(NAMU)호'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한국인 선원 6명을 포함한 24명 전원이 무사했고 화재도 진압됐지만, 이 사건이 남긴 충격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불길이 채 꺼지기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공격했다"며 미국의 군사 작전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에 한국이 동참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피격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 나온 발언이었다. 한국 정부와 HMM 측은 폭발 원인을 이란의 공격으로 단정하기를 거부하고, 사실 확인이 먼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옳은 태도다. 그러나 이 신중함이 오래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

이 위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핵시설을 겨냥한 공습을 개시했고, 이 과정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 걸프 지역 친미 국가들에 보복 공습으로 맞섰고, 3월 4일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선언했다. 주지하듯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먼저 열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그 응답이었다. 이 맥락을 지우면, 이후의 모든 논리가 일그러진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석유 교역량의 약 20%, LNG의 20%가 통과하는 지구적 에너지 동맥이다. 봉쇄 이후 이 수로를 지나는 선박은 평시의 5% 수준으로 급감했고, 아시아 일부 지역의 연료 부족과 전 세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이 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이유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들여오는 우리로서는, 호르무즈가 막히는 것은 경제의 혈관이 막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군함을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자동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에너지 이해와 군사 개입 사이에는 깊고 위험한 간극이 있다.

3.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3월 한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파견해줄 것을 공개 요청한 바 있다. 동맹국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참여를 주저하자 강한 실망감을 표출했고, 특히 참여를 거부한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 관세 인상과 주독미군 감축이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든 전례도 있다.

이 구도는 분명하다. 압박, 명분, 그리고 처벌. '동맹의 책임'이라는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질은 군사 편입 요구다. '프로젝트 프리덤'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이 붙어 있어도, 이란은 외국 군대가 해협에 접근하거나 진입할 경우 공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호위 작전에 참여하는 순간, 한국은 사실상 교전 당사자가 된다. '항행의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HMM 나무호 사건은 이 압박의 새로운 지렛대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선박 피해를 근거로 한국도 호르무즈 위기의 제3자가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아직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사건을, 한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억지 논리의 속도에 우리가 끌려가서는 안 된다.

4.

국민주권정부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맹의 강한 속박에 처한 한국, 다시 딜레마적 상황이다. 원유 수송로를 안전하게 지켜야한다는 에너지 안보의 요구, 동맹의 요구에 침묵으로만 응대할 수 없는 외교적 압력, 군대 파병에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민주주의적 원칙.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딜레마적 상황을 단순히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로 보는 것은 옳지않다. 핵심은 수단의 선택이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군사 호위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맹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동맹의 모든 요구를 수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 국제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혔던 '실질적 기여'를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실질적 기여'의 내용을 어떻게 채우느냐다.

한국에는 군사 개입 없이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카드가 있다.

첫째, 비전투 원칙을 명문화해야 한다. 선박 안전 정보 공유, 의료 지원, 피해 선원 구조 같은 비군사적 기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를 공식 입장으로 선언하면 압박에 대한 일관된 방어선이 생긴다.

둘째, 외교적 중재 역할을 적극 자임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이란을 포함한 중동과의 경제 관계를 동시에 가진 보기 드문 나라다. 인도는 이번 사태에서 "대화와 외교를 지지한다"는 입장과 함께 국제법에 따른 자유항행 보장을 촉구하며 평화적 해결 지원 의지를 밝혔다. 한국이 이 대열에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유엔 안보리가 중국·러시아의 거부권으로 막혀있는 상황이라면, 한국이 독자적인 다자 외교 플랫폼을 열어야 한다.

셋째, 장기적 과제로서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호르무즈 위기는 10년에 한 번씩 반복되는 경고장이다. 중동 의존도를 분산하고, 전략비축 역량을 키우며, 에너지 안보를 군사화가 아닌 다각화로 풀어가는 중장기 로드맵을 지금 만들어야 한다.

5.

현실적으로 이재명 정부에게도 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맹이 전쟁 참여의 백지수표가 될 수는 없다. 전쟁 참여는 대통령의 결심이나 외교부의 답변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 헌법적 절차와 국민적 동의, 국회의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정당성이다.

곧 트럼프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이 예정된 가운데, 미국은 중국에도 이란을 설득해 해협을 열라는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 국면은 순전한 군사 대결이 아니라 복잡한 외교적 게임이기도 하다. 한국이 군사적 참여로 뛰어들면 이 게임의 말이 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중재자로 선다면 게임의 판을 바꾸는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호르무즈의 화염은 지금 이 순간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국가의 품격은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서 드러난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중견국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부당한 동맹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강대국간 세력전에 휘말리지 않는 슬기. 즉 참전국이 아니라, 평화를 설계하는 나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선택이다.

▲미국과 이란이 충돌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선사 HMM 운용 선박이 폭발과 화재 사고를 당한 지 이틀째인 5일 사고 원인에 대한 의문을 중심으로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광저우에서 열린 HMM나무호의 진수식. ⓒ연합뉴스

원동욱

원동욱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와 중국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이자 공공 지식인으로, 현재 사단법인 외교광장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동아대학교 국제대학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과 연구를 병행해왔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3대 한국현대중국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정치와 외교, 미중 전략경쟁, 동아시아 질서를 연구하며, 주요 매체 기고와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활동을 통해 공공 지식인으로서 사회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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